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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분단과 역대 정부의 대북 정책(6)

기사승인 2019.08.13  19: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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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길랑 / 천주교 서울평협 전 대외협력위원장

Ⅲ 제4절 일본의 패망과 한반도 분단

Ⅰ 소련의 대일 참전

명길랑 / 천주교 서울평협 전 대외협력위원장

포츠담 회담 개최 전후로 소련은 극동에서 대일 참전시 필요한 군사 물자 지원을 미국에 요청하고 이를 승인한 미국으로부터 각종 최신 무기를 포함한 막대한 군장비(870만 톤)를 소련으로 수송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두 차례에 걸친 일본의 강화 중재 요청으로 인해 소련은 일본의 패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간파하고 있었다.

또한 스탈린은 포츠담 회담이 진행되던 7월 24일, 미국이 7월 16일 핵실험에 성공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소련도 핵무기 개발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한 발 앞서 미국이 엄청난 파괴력과 가공할 만한 힘을 가진 핵을 개발한 것이다.

곧 이 원자폭탄이 일본에 투하될 것이라고 직감한 스탈린은 대일 참전을 서둘러 앞당겨야겠다고 결심한다. 8월 하순 참전 예정을 앞당겨 당장 시작하지 않으면 자칫 일본이 항복하게 된다면 스탈린의 극동전략은 물거품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포츠담 회담 폐막(8월 2일)으로부터 4일이 지난 1945년 8월 6일 상오 8시 15분 스파츠(Carl Spaatz) 장군의 육군전략공군대에 의해 일본의 군항도시(軍港都市) 히로시마에 핵폭탄이 투하 되었다. 소련은 원폭투하 2일 후일 8일 몰로토프 외상을 시켜 주소(駐蘇) 일본대사에게 “내일(9일)부터 소련군은 대일전쟁에 참전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통고 했다. 일본에 대해 사실상 선전 포고를 한 것이다.

9일 새벽 소련은 연합군의 일원으로서 일본에 대해 전면적인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남부 사할린, 쿠릴열도, 한반도 동북단, 만주, 북중국을 노도와 같이 공격해 내려갔다. 바로 이날(9일) 일본 규슈 서남 해안 도시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투하 되었다. 두 차례의 원폭 투하와 소련군의 기습이 겹치자 일본군은 천황의 권위를 손상시키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포츠담 선언을 수락할 용의가 있음을 연합국에 통고 했다. 이 같은 반응에 놀란 것은 미국이었다.

미 국무성은 원폭의 위력이 있었다고는 하나 일본이 이처럼 빨리 항복할 줄은 예상치 못했다. 포츠담 회담 종반에 접어들면서 미국은 또 다른 고민에 빠져 들었다. 전쟁 종식 후 분명해 질 소련의 공산 세력의 확장, 다시 말해 극동지역으로의 공산주의 팽창을 방어하는데 있어 전략상 한반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소련군의 발빠른 남진을 제어할 방법은 미군이 즉각 한반도를 점령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미군은 600마일이나 떨어져 있는 오키나와 섬에 있었다. 당시 미군이 그들의 군대를 한반도에 상륙시키기란 불가능 했다. 왜냐하면 한반도에 진주시킬 병력을 실어 나를 수송 선단을 마련하는 데만 한 달 이상 소요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만일 소련군이 부산까지 단숨에 내려와 한반도 전체를 점령한다 해도 미국으로서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일이 이렇게 된다면 공산 정권이 수립될 때까지 소련군은 절대로 철수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미국이 잘 알고 있었다. 

Ⅱ 소련의 대일 참전과 한반도 분단
미국은 제2차 세계 대전 막바지에 전쟁수행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1944년 12월 초에 국무성, 전쟁성(전쟁전 육군성), 해군성이 함께 3성조정위원회(三省調整委員會)를 발족시켰다. 이곳에서 정치적, 군사적, 외교적 성격을 띤 전반적인 문제를 다루고 3성의 의견을 조정하기 위해서였다. 의장직은 국무성이 맡았다.

전황이 급박한 상황에 처해 있던 3성조정위원회에서는 일본이 포츠담 선언을 수용할 용의가 있다고 연합국에 통보하던 날인 8월 10일 오후 늦게, 일본군의 항복 조건 등이 담긴 항복문서 '일반명령 제1호'의 문안 작성 임무를 주무부서인 전쟁성 작전국 전략정책단(Strategy And Policy Graup)에 긴급 명령하였다. 이 명령은 받은 전략정책단 조지 링컨(George A. Lincoln)은 '일반명령 제1호' 가운데 한반도와 극동지역(주로 소련군이 일본군의 항복을 접수할 지역)에 관계된 부분의 초안 작성 임무를 전략정책단 정책과(Policy Section)과장 본스틸 대령(Charles H. Bonesteel)에게 명령했다.

본스틸 대령이 지혜를 짜내야 할 문제는 한반도의 어느선(線)을 구획하여 그 선 이남은 미군이, 그 이북은 소련이 각각 일본의 항복을 받느냐는 것이었다. 본스틸 대령이 이 명령을 받은 시간은 10일 밤 11시 30분, 초안을 올리는 데까지 허용된 시간은 단 30분이었다. 전략정책단이 아무리 엘리트 집단이라 하더라도 3천만 단일 민족 국가의 운명이 좌우될 중요한 임무를 일개 대령에게 맡기다니, 그것도 30분 안에 말이다.

어쨌든 본스틸 대령이 먼저 생각해야 할 일은 소련이 수용할 수 있는 항복 선을 설정하고 그 이남으로 소련군의 진주를 저지하는 일이었다.
소련군은 벌써 9일부터 작전을 개시하여 서북부 쪽의 북중국, 만주, 남 사할린, 쿠릴열도 등으로 일제히 공격을 시작했고, 일부 병력은 한반도 최북단 동북지역으로의 상륙작전을 준비 중에 있다는 정보가 들어와 있었다. 반면 미군은 부산에서 600마일 밖에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소련군의 남진 저지선을 찾아야 했다.

의자에서 일어선 본스틸 대령의 눈이 벽에 걸려 있는 작은 지도에 멎었다. 첫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한반도를 가로지른 북위 40도 선이었다. 이 선으로 분할하면 분명히 소련이 수용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북쪽으로 치우쳤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시 38도선에서 위아래를 살쳐보고 이 선이 가장 합당하다고 판단했다.

이 지역에 진주할 미·소 양군 사령관들에 의해 북위 38도선을 따라 분할되는 두 지역 내의 남과 북에서 일본군의 무장해제와 항복을 받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한 38도선 이남에 수도 서울과 몇 곳의 주요 항만 시설이 있는 항구 도시도 있음을 염두에 두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인구의 3분의 2와 경공업의 대부분과 농업생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역을 점령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38도선 설정을 '일반명령 제1호'가운데 한국관계 부분을 삽입하면 적절할 것이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소련이 이 안을 수용할지에 대한 의문이 남았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고 판단한 본스틸 대령은 이에 관한 구체적인 문장 초안 작성을 명령대로 30분 안에 끝냈다. 작성된 문안은 한밤중에 전략정책단에 보내졌다.

본스틸 대령은 자신이 작성한 문안에 대해 “분할선은 어디까지나 일본군의 항복을 나누어 접수하기 위한 편의상의 잠정적인 임시 군사적 선일 뿐 정치적으로 확정하는 경계선이 아님”을 애써 강조했다. 이 같이 강조된 본스틸 대령의 의도는 여타 기획팀 요원들과 마찬가지로 단일 민족의 한반도를 두 개의 이념 대립 체제로 분할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본스틸 대령이 거듭 강조하는 분할선 설정 목적은 오직 소련군이 한반도 전체를 점령하기 전에 공인된 항복선을 정해두자는 의도일 뿐이라고 했다. 이 같은 판단에서 본스틸 대령은 자신이 적성한 문서를 들고 곧바로 정책과장보인 맥코맥 대령(James McCormack)과 러스크 대령(Dean Rusk)을 이끌고, 맥아더(Douglas MacArthur)가 일본에 대해 발표할 여러 지역의 '일반명령 제1호'초안을 작성하는 철야 작업에 착수했다.

이들 3명의 대령은 일본군 항복지역의 구분과 미·영·중·소 4개국이 가장 편리한 지역에서 일본군의 항복을 실제적이고 효율적으로 접수할 방법, 그리고 극동에서의 소련의 위치 등을 토의했다. 그만큼 일본군 항복지역 분할권에 대한 결정은 화급을 다투는 사안이었고, '일반명령 제1호'의 총체적인 문장이 결정되는 대로 황급히 수행되어야만 했다.
본스틸 대령은 전략정책 요원들을 재촉하여 철야 작업을 강행했다. 그리고 철야 작업을 통해 작성된 '일반명령 제1호' 본안 초안은 합동기획처의 심의를 거쳐 전쟁성의 최종안으로 채택되어 8월 11일 이른 새벽 3성조정위원회로 넘겨졌다. 8월 11일 이른 새벽 전쟁성으로부터 '일반명령 제1호' 문장 초안을 넘겨받은 3성조정위원회에서는 11일과 12일 이틀 동안 이 초안을 검토했다. 마침내 초안 검토를 끝낸 3성조정위원회는 합참의 군사적 견해를 듣는 절차만을 남겨놓고 있었다.

1. 소련군의 남진 상황
1945년 8월 12일 소련군은 한반도의 최북단 웅기(雄基)와 나진(羅津) 부근에서 육·해군 합동 작전을 전개하고 있었다. 한편 전략정책단 단장이며 합동참모부 기획처의 육군 기획 요원이기도 한 링컨 장군이 3성조정위원회에서 넘겨받은 '일반명령 제1호' 초안을 검토하고 있었다. 소련군의 한반도 기습작전이 미국으로 하여금 38도선의 설정을 서두르게 하였고, 소련군의 한반도 상륙은 미국을 더욱 절박한 상황으로 몰았다.

한반도 동북 지역에 진주한 소련군은 제25군의 일부와 제10기갑사단 일부로 기계화여단 기갑사단 정도였다. 제25군에 소속된 대부분의 병사들은 시베리아 강제노동수용소에 수감 중이던 죄수들을 데려다 급히 편성한 부대였다고 한다. 이들 소련군 부대들은 한반도 북단 지역으로 침입한 후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던 일본군을 굴복시키고 청진, 원산, 춘천, 평양, 개성 등을 향해 점령해 내려오고 있었다. 8월 12일 한반도에 처음 상륙하기 시작하면서 소련군 주력 부대들은 남만주의 일본 관동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링컨 장군 전략기획단 그룹은 1945년 8월 14일 합참과 3성조정위원회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일반명령 제1호'의 총체적인 문장을 재구성 했고, 8월 15일 트루먼 대통령의 재가를 받은 후 즉각 연합국 최고사령관인 맥아더 장군과 영국, 그리고 소련에 급송했다.

「'일반명령 제1호'의 내용은 ㉠ 만주와 북위 38도선 이북의 조선, 사할린 및 쿠릴열도에 있는 일본군은 소련의 극동최고사령관에게 항복하고, ㉡ 일본국 대본영과 일본국 본토 및 이에 인접한 섬들, 38도선 이남의 조선과 류우꾸열도 및 필리핀에 있는 일본군은 미국 태평양 육군부대 총사령관에게 항복한다」는 내용이었다. 일본은 1945년 8월 15일 12시 천황이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했다.

3성조정위원회를 비롯한 합참, 전략정책단 등 기획팀들은 '일반명령 제1호'에 담긴 메시지를 스탈린에게 보내놓고 불안해했다. 왜냐하면 소련이 부산까지 점령한다 해도 미국은 아무런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당시 소련군이 한반도의 어디를 점령했으며 앞으로 얼마나 더 전진할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초조한 마음으로 스탈린의 회신을 기다릴 뿐이었다.

2. 스탈린 38도선 분할 수용
1945년 8월 16일 스탈린이 전격적으로 '일반명령 제1호' 트루먼 메시지에 답해왔다. 미국의 38도선 분할 제의에 동의한다는 내용과 자신들이 쿠릴열도 전부와 홋가이도의 북부를 점령하겠다고 요구했다(1945.8.16.). 이에 대해 미국은 소련이 쿠릴열도 전체를 점령하는 데에는 동의했으나 홋가이도의 북반부를 점령하는 것은 거부했다(1945.8.18.). 그러나 소련은 한반도 남쪽으로 더 진공할 수 있었음에도 38도선 이북의 조선 영토에서만 일본군의 항복을 받는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소련이 참전하기 전에 일본이 항복을 했다면 한반도 전역의 일본군이 미군에게 항복하였을 것이다. 반대로 일본의 항복이 늦었다면 소련군은 한반도 전체뿐만 아니라 일본 홋가이도의 일부까지 점령했을 가능성이 컸고 종전 후 극동지역의 판도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미·소 양군이 38도선을 경계로 한반도를 점령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일본이 한반도를 강점한 데 있다. 한반도가 일본의 식민지가 아니었다면 미·소 양군이 일본군과 전투를 한다 해도 한반도를 점령할 이유는 없다.

한반도 분단에 대한 책임은 그 뿐만이 아니라 아직까지 고의적이었다는 증거는 없지만 일본의 항복 시점과 38도선이 확정된 사실 사이에도 깊은 연관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성동신문 sdnews2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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