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업계 베테랑 CEO, 정치 신인으로 ‘새로운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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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업계 베테랑 CEO, 정치 신인으로 ‘새로운 도전’
  • 강서양천신문사 강혜미 기자
  • 승인 2019.10.24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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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숙 강서구의회 의원

성공에 대한 이유와 목표가 분명한 사람은 일을 대하는 깊이가 다르다. 40여 년을 한 분야에서 흐트러짐 없이 앞만 보며 달려온 그는 ㈔한국관광클럽 이사장을 맡을 정도로 이미 여행업계에선 내로라하는 베테랑으로 불린다. 그런 그가 제8대 강서구의회에 초선 의원으로 첫 발을 내디뎠다. 누구보다 넘치는 에너지로 역동적인 의정활동을 펼치고 있는 강서구의회 이충숙 의원을 만났다.

 

이충숙 의원은 지역 정치에 입문한 뒤 정신 없이 보낸 지난 1년이 너무 재미있었다고 했다. ‘의회를 새롭게 변화시켜 보고 싶다’는 생각에 들어선 정치 무대는 배워야 할 것도 알아야 할 것도 많았다. 그럴수록 이 의원은 열심히 공부하고 누구에게든 몸을 낮춰 배움을 청했다.

정치인이 되니 주민들이 일상생활에서 불편을 겪는 부분들을 찾아 개선해 주고, 예산의 적정한 편성을 위해 심의를 하고, 조례를 만들고, 무엇보다 약자의 편에 서서 문제 해결을 할 수 있어서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물론 그만큼 불편한 일도 생겼다.

“전에는 그게 얼마가 됐든 남을 돕는 게 당연한 삶을 살았어요. 제가 일에선 반듯하고 정확해도, 강한 사람에겐 강하고 약자에겐 또 한없이 약한 사람이거든요. 저는 저를 꾸미는 데 돈을 쓰기보단 어려운 이들과 나누는 게 행복하더라고요. 그런데 정치인이 되고 보니 순수한 나눔에도 제약이 따르더라고요. 정치를 시작하고부터는 제게 허용되는 범위 내에서만 남을 도울 수 있어서 아쉬워요.”

이충숙 의원은 정치에 입문하기 전, 40여 년을 여행업에 종사했다. 1978년 한주여행사 산업시찰 안내원으로 시작해 마이크를 쥐고 여행지 곳곳을 누비며 해박한 지식과 뛰어난 업무능력으로 승승장구했다. 그 결과 서울시장 표창(1982~3년), 교통부장관상(1984년), 교통부 주관 관광종사원 서비스 경진대회 최우수상(1985년) 등을 잇달아 수상하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여행업계에서 여성들에게는 매표, 안내, 상담 정도의 업무만 주어졌다. 그러나 이 의원의 목표는 분명했다. 여성에게 거의 주어지지 않았던 영업 업무를 따내기 위해 철저한 자기관리와 악착스러울 정도의 성실함으로 업계 최초의 ‘여성 영업부장’ 자리를 차지했다. 남자들과 동등한 실력으로 인정받기 위해 당직, 출장은 물론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업무에 매달렸다. 회식이 있던 다음 날에도 가장 먼저 출근해 자리를 지켰다. 언제나 당당한 자세로 열정적으로 일하고 사회생활에서도 빈틈 없이 최선을 다했다.

2001년 12월에는 그간 축적된 영업 노하우와 경험을 바탕으로 관공서 연수를 전문으로 하는 ‘㈜센타투어’를 설립했다. 방화동 지하실에서 보증금 400만 원으로 시작한 센타투어는 현재 직원 수가 30여 명에 달할 정도로 탄탄한 규모를 갖추고 있다.

센타투어는 ‘최선의 서비스로 최고를 지향하자’는 사훈과 ‘품격 있는 여행’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워 주로 공공기관 및 공기업, 기업체의 기획연수, 교육훈련, 워크숍, 세미나 등을 진행하고 있다. 전통시장과 주변 관광지를 연계한 ‘시장투어’, 어르신과 장애인을 위한 ‘돌봄여행’ 등을 기획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2013년에 ‘내 생애의 마지막 여행’ 프로그램을 진행한 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참가자 대부분이 임종을 앞둔 분이셨는데, 가족들과 함께 제주도 여행을 보내드렸지요. 그분들에게 바깥 세상을 보여 드리고 여행의 기회를 제공해 드리면서 저도 큰 감동을 받고 행복했어요.”

기업인 이충숙에게 오늘날의 성공의 이유이자 원동력은 척추 장애를 가진 ‘언니’였다. 어린시절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주변의 편견을 오롯이 견뎌내야 했던 언니를 보며 꼭 성공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단다. 그런 환경 속에서 남을 배려하고 나누는 행동은 그에겐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제가 지금은 의정활동에 집중하고 있기도 하지만, 사업은 이제 어느 정도 궤도에 올려둔 상태라 직원들에게 많은 부분을 맡기고 있어요. 그래도 기업인으로서의 바람이 있다면 중소기업도 대기업 못지않은 ‘신바람 나는 회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의원으로서는 더 당당하게 일하면서 역량을 키워 소외된 이웃과 약자들을 위한 정치, 서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를 하고 싶어요. 의원은 이 지역의 작은 봉사 일꾼이잖아요. 세비를 받는 만큼 그 이상으로 일해서 주민들에게 편의를 제공할 수 있도록 맡은 바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인터뷰에서 이충숙 의원이 가장 많이 언급한 말은 ‘감사’다. 일찍이 세상을 떠난 부모님을 대신해 가장의 무게를 기꺼이 짊어지면서도, 어릴 때부터 꿈꿔온 방송인 대신 여행사 직원으로 마이크를 잡으면서도 그는 불평 대신 감사한 마음으로 현재를 살아 왔다. 남들이 흔히 말하는 성공을 이루었기에 더 많이 베풀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이충숙 의원. 이제는 정치인으로 그가 보여줄 새로운 변화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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